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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샘터] 이종민 원장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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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베푸는 삶이 더 행복한 의사



조금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대신 굳이 남에게 한 뼘이라도 곁을 내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이종민 원장이 그런 경우다.

그녀의 나눔과 베풂엔 이유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손을 내밀 때 그녀 또한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곤 한다.




l 개원 33주년 천안 이화병원


누군가의 직업관을 설명하기 위해 착하다는 말을 수식어로 차용하는 건 불가피한 오조준이다. 예를 들어 착한 바리스타란 말이 커피전문가로서의 유능함을 보증하지 않는 것처럼 착한 의사란 말 또한 의료인의 기술적 숙련도나 전문성을 일발에 증명하진 못한다. 



그럼에도 이종민(63) 원장에게 굳이 ‘착한 의사’라는 수식을 고집하고 싶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80년 2월 22일 의사면허증을 발급받은 날부터 걸어온 의사로서의 궤적이 자로 그은 직선처럼 반듯한 길로만 일관해온 까닭이다.



그녀의 삶은 에돌아가는 법을 모른다. 작은 체구,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그녀는 늘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대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떠올리며 정직한 한길을 걸어왔다.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순간부터 그녀는 스스로 ‘절제와 봉사’라는 말에 속박되기를 자청한 의료봉사자였다. 



“고등학교 때 제게 의대 진학을 강권하셨던 담임선생님께 안부 전화를 드릴 때면 ‘사범대 간다고 할 때 그냥 두시지 왜 의사가 되라고 떠미셨어요? 선생님 때문에 제 삶의 질이 말이 아니에요’ 하고 툴툴거리면서도 그게 제 운명인가보다 하고 말지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들고요.”



넓지 않은 그녀의 진료실 한쪽엔 책장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사진 액자들이 놓여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저마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사진 속 얼굴들도 의사가 된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귀한 인연들이다. 출산 후 산모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의사의 길에 들어선 지 사십여 년이 흘렀음을 실감하곤 한다. 



사진 속에서 한결 같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이 원장의 눈가에도 잔주름이 늘었다.



힘든 사람일수록 소외시키지 말고 

돕고 살라는 게 부모님의 가르침이었어요.






l 3만 이화둥이의 산파


그래도 지금껏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직업으로서의 의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인술을 익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겠다던 다짐이다. 언제 태아가 나올지 몰라 삼 년째 당직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지금도 이 원장은 24시간 병원을 떠나지 못한다.

1985년 6월 1일 ‘이화산부인과’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던 천안 이화병원은 올해로 개원 33주년을 맞았다. 지난 2002년 이곳 쌍용동으로 이전해온 후 신관 건물을 증축한 이화병원은 현재 산과, 부인과, 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소아과 등에 아홉 명의 의사가 근무하며 천안의 대표적인 산부인과병원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직원 수 100여 명, 병실 규모도 29실 57병상의 개인병원이다.



이 원장뿐만 아니라 대다수 천안 시민들에게도 이화병원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어린 장소다. 이화병원에 전산화 프로그램이 도입된 것은 1998년부터지만 그 이후 등록된 환자 수는 22만명을 훌쩍 넘는다. 그 말은 곧 천안 일대에 거주하는 가임기 여성들은 거의 한 번씩 이곳에서 진료를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뜻이다. 40대 이하의 시민들 중 상당수가 이화병원 분만실에서 이 원장의 도움으로 세상과 대면 한 사람들이다. 



“제 손으로 직접 받은 이화둥이만 해도 3만 명이 넘으니 그럴 만도 하죠. 그 아이들이 부모가 돼서 자기 아이를 낳으러 올 때는 가슴을 울리는 전율 같은 게 느껴져요. 언제 분만이 있을지 모르니 늘 긴장 상태로 병원 안에서 대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도 무사히 새 생명의 탄생을 보고 나면 의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의사들은 의료사고 등을 걱정해 다들 산부인과를 안 하려는 추세라 저마저 이 일을 외면할 순 없어요.”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의사의 길을 택한 자신의 소명도 생명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고집 때문에 이 원장을 포함한 이화병원 의사들은 한 번도 중절 수술을 해본 적이 없다. 인간의 판단은 한계가 많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생명을 살리는 의료행위는 하되 그 이상은 신의 영역으로 맡겨놓아야 한다는 것이 의사로서의 판단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매사에 이지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능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 역시 남을 돕는 일에는 너무도 쉽게 지갑을 여는 헐거운 경제관념의 소유자임을 부인하진 않는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마흔다섯에 혼자 돼 힘든 농사일로 우리 6남매를 키우신 어머니께 배운 대로 사는 거죠. 힘든 사람일수록 소외시키지 말고 돕고 살라는 게 부모님의 가르침이었어요. 이게 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천성인 것 같아요.” 전문직 고소득자답게 조금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한 이유를 묻자 내놓은 명쾌한 대답이다.



그런 이 원장을 두고 대림산업 대표를 지낸 남편이 “나는 부르주아적 월급쟁이, 당신은 프롤레타리아적 오너”라며 놀리곤 하던 사정이 이해가 된다.





l 나를 절제하면, 더 나눌 수 있다


그녀의 검약한 생활 습관은 결국 절제와 봉사라는 삶의 철학에 맥이 닿아있다. 병원 수익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에게 되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은 이 원장의 오랜 꿈이었다. 


 

이 원장이 진즉부터 대학에 입학한 고졸 학력 직원들에게 개인 돈으로 장학금을 대주고, 형편이 어려운 외부 단체 등에 기부금을 보낸다는 건 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편으로 이 원장은 한국으로 시집온 다문화여성들이 친정 엄마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로도 널리 알려져 왔다. 


 

1990년대 초, 위급하게 병원에 실려 온 한 이주여성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임신과 출산의 두려움을 알게 된 이 원장은 이후 다문화 이주여성들에게 한국 요리와 풍습을 가르치고 임신 출산 육아를 지원하는 ‘국제부모모임’을 오랫동안 자비 로 운영해 온 장본인이다. 


 

그게 인연이 돼 개원 이후 이화병원에서 몸을 풀고간 다문화여성들의 국적만 해도 30개국이 넘는다. 부부, 미혼모를 대상으로 한 ‘성생활 아카데미’도 큰 보람을 느꼈던 재능봉사 프로그램이다.



그녀의 검약한 생활 습관은 

결국 절제와 봉사라는

삶의 철학에 맥이 닿아 있다.



그렇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변의 힘든 이웃들에게 눈길을 주다 보니 도와야 할 상대는 계속 늘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두 명과 청소년 일곱 명에게 학비를 대주던 것을 시작으로 한 복지재단에 출연한 기금이 벌써 15억 원을 넘어섰다. 



직원들과 돈을 모아 잠비아 청소년 40여 명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 일에도 힘을 보탰고, 요양보호사 자격이 있는 이주여성 두 명에게는 아예 병원 내에 일자리를 마련해줬다. 향수병에 시달리는 이주여성들을 위해 친정나들이 비용의 절반을 선뜻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도 이 원장이었다.



“해외 의료봉사에 특히 보람을 많이 느껴요. 의료진을 데리고 친정 마을에 간 여성이 금의환향한 것처럼 마을 사람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는 것도 행복하고요. 동남아엔 아직도 약 하나 흔하게 구할 수 없는 곳이 많아요. 필리핀 네그로스 섬에 있는 바콜로드라는 마을에 갔을 때는 돈이 없어 소금조차 못 사 먹는 주민들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런가 하면 영양부족으로 결핵에 걸리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았고요. 온 가족에게 전염이 되는 건 금방이에요. 그런 사정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15년 넘게 해마다 한두 번씩 필요한 의약품들을 사서 방문하게 됐어요.”



지난 한 해 이 원장이 기부금으로 쓴 금액은 약 8천여 만 원. 1985년 처음 병원을 개원한 뒤 지금껏 기부와 봉사활동에 사용한 비용 총액이 30여 억 원에 육박한다. 이종민 원장은 쉽지 않은 그 길을 삼십삼 년째 즐겁게 걸어가는 참이다. 



아직도 그녀는 기부와 봉사에 목마르다. 열두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내려다 그리움에 눈물을 글썽거리고, 남을 위해 무언가 나눠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사람. 그녀에게 ‘착한 의사’라는 말 외에 또 어떤 헌사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출처 월간<샘터> ㅣ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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